이 열녀비는 문소전직(文昭殿直) 휘 오(衤吳)公의 14세손, 영주(寧州)공 휘 석손(碩孫)의 13세 휘 호(琥)公의 처 행주기씨(妻 幸州 奇氏)의 비이다.
기씨(奇氏)는 성품이 온순하고 슬기로웠으며 소녀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향리사람들이 출중한 규슈요 효녀라고 칭송이 많았다.
13세 때는 부군 호(琥)와 혼례를 올리고 다시 길일을 택하여 신행키로 하였다.
다음해 公이 처가댁 방문에 부군은 노독과 괴질로 세상을 뜨니 14세 나이로 소복하고 시가로 와서 시부모께 효행과 부도(婦道)를 다 하였으며
유림에서 효행과 정렬을 포상(褒賞)하고 고을 수령이 효열을 칭송하고 열녀장(烈女狀)을 내렸다.
1980년 후손이 이를 기리기 위하여 비를 세웠다.
효열실록은 대한충의효열록(大韓忠義孝烈錄) 이천군지(利川郡誌) 향사(鄕史) 한승남문집(韓勝男文集) 이천군비문(利川郡碑文) 등에 실려 있다.
소재지 : 利川市 大月面 郡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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