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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김씨의 본관

순천고호변동기 (順天古號變動記)

順天의 沿革

全羅道는 本來 弁韓地帶로서 百濟의 所有가 되었다.
新羅 武烈王時 羅唐聯合軍에 依해 滅亡되었는데 처음에는 唐의 所有가 되었다가 후에 新羅에 편입되었다.
眞聖女王 5年(892)부터 甄萱이 占據하였는데 高麗太祖에게 亡하여 高麗成宗 때 이르러 江南, 海陽島로 만들었다.
이때에 昇州는 江南에 소속되었으나 顯宗 때 와서 兩道를 합쳐 全羅道로 만들었고 그대로 朝鮮朝로 이어왔다.

元來 百濟의 欿平郡이었는데(일명 砂平 또는武平이라한다) 新羅로 吸收되면서 昇平郡이라 하였고 高麗成宗 14年(995) 昇州兗海軍節度使를 두었으며(일명 昇化로 한다) 靖宗 2年(1036)에 다시 昇平郡이라 하였다. 그 후 忠宣王 元年(1309)에 昇州牧으로 昇格시켰다가 同 2年에 順天府로 고쳤다.
이것이 順天으로 불리어 진 根幹이 된 것이다.

朝鮮 太宗 13년(1413) 都護府로 되었고, 世祖 때는 鎭을 두었다가 孝宗 때에 縣, 뒤에 府로 昇格하였고, 正祖 10年(1786)에 縣으로 降等한 후에 다시 府로 昇格시켰다.
1895년 郡으로 되었다가 1948年 8月 15日에 麗水와 함께 市로 昇格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前의 順天郡은 昇州郡으로 되었다.

郡名의 來歷은 欿平, 昇平, 昇州, 平陽, 昇化, 等으로 되었으며 甲子譜 455쪽과 韓國典考에 沙平, 武平, 充海로도 적혀있다.

(편집부의 해설 1. 順天金氏라는 貫鄕은 甲申初譜 刊行時(?)에 公式的으로 紀錄이 된 듯하다. 參考文獻 1) 世界大百科事典, 國史大事典, 韓國典考, 甲子譜 參考文獻 2) 『韓國地名沿革考(4294, 1961 權相老編, 東國文化社)』


"순천군(順天郡)" 조에

全羅南道에 있으니 本 百濟 欿平(一作 沙平 ‧ 一作 武平)郡인데(地形이 低陷平衍한 故로 명이니)
新羅景德王이 昇平으로 고쳤더니, 高麗成宗 14년(檀3328)乙未에 昇州(一云昇化)兗海軍節度使)라 하였다. 靖宗 2년(檀3369)丙子에 다시 昇平郡이 되고, 忠宣王元年(檀3642)己酉에 昇州牧으로 승격하였다가 忠宣王2年庚戌에 順天으로 고치어 府로 강등하였더니 朝鮮이 因之하였다가 太宗13年(檀3746)癸巳에 都護府가 되고 世祖朝에 비로소 鎭을 두었더니 孝宗朝에 縣이 되었다가 곧 復舊하고 正祖10年(檀4119)丙午에 또 강등하여 縣이 되었다가 明年丁未에 또 復舊하다.
大韓高宗32年(檀4228)에 例改하여 郡이 되고 純宗隆熙2年(檀4241)에 樂安君을 廢하고 一部가 내속하였다.


參考文獻 3) 全羅道順天府建置沿革(案)

全羅南道
原本 : 本弁韓地 爲百濟所有 新羅武烈王與唐滅之 初爲唐有 後入新羅 眞聖王五年甄萱據止 爲高麗太祖所滅 成宗分爲江南海陽二道 昇州隸江南 顯宗合爲全羅道 國朝因之 註 : 이상은 丁酉譜(1927)부터 收錄됨 (甲申 丁巳譜에는 없음)

국역 : 本來 弁韓地帶로서 百濟의 所有가 되었다. 新羅 武烈王時 羅唐聯合軍에 依해 滅亡되었는데 처음에는 唐의 所有가 되었다가 후에 新羅의 편입되었다. 眞聖女王 5年(891)辛亥부터 甄萱이 占據하였는데 高麗太祖에게 亡하여 高麗成宗 때 이르러 江南, 海陽道로 만들었다. 이때에 昇州는 江南에 소속되었으나 顯宗 때 와서 兩道를 합쳐 全羅道로 만들었고 그대로 朝鮮朝로 이어왔다.

順天은 本 百濟 欿平(一作 沙平 ‧ 一作 武平)郡인데(地形이 低陷平衍한 故로 名이니)
新羅景德王이 昇平郡으로 고쳤는데, 高麗成宗十四年(檀3328)乙未에 昇州(一云昇化)兗海軍節度使)라 하였다. 靖宗 2년(檀3369)丙子에 다시 昇平郡이 되고, 忠宣王元年(檀3642)己酉에 昇州牧으로 승격하였다가 同二年庚戌에 順天으로 고치어 府로 강등하여 조선으로 이어왔다. ----------------

朝鮮太宗十三年(檀3746)癸巳에 都護府가 되고 世祖朝에 비로소 鎭을 두었는데 孝宗朝에 縣이 되었다가 곧 復舊하고, 正祖十年(檀4119)丙午에 또 강등하여 縣이 되었다가 이듬해 丁未에 또 復舊하다. 大韓高宗32年(檀4228)에 例改하여 郡이 되고 純宗隆熙2年(檀4241)에 樂安君을 廢하고 一部가 내속하였다.

출처 : 順天金氏 丁酉譜(1927) 및 韓國地名沿革考 權相魯編 東國文化社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