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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문

順天金氏電子世系發起文

오늘 날,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전자문화(電子文化)가 급속도로 발전, 소위 IT(Information Technology, 정보기술)시대가 됨으로써4차산업혁명시대(초연결,초지능의융합) 가 도래되었다고 합니다. 즉 산업(産業)사회뿐 만 아니라 문화(文化)사회도 크게 요동치고 있고, 인문(人文)사회 또한 커다란 변화를 초래함으로써 이러한 정보기술시대에 적응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족보(族譜)는 처음 왕세계(王世系)로부터 시작하여 귀족(貴族)사회로 이어졌다가 오늘날에는 한 씨족(氏族)의 계통을 기록한 책(한국민족문화대백과)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高句麗) 광개토대왕 순수비에서 왕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고려(高麗) 문종(文宗)시대부터 인재등용에 활용하기 시작, 점차 발달되어 조선(朝鮮) 영조(英祖)시대에 이르러 극에 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형식은 20세기 말까지 큰 변화 없이 유지되어 왔습니다만 귀족사회의 몰락과 더불어 전통적(傳統的) 각 씨족사회 윤리(倫理)까지도 소원(疎遠)하게 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금일까지 기간(基幹)을 잡아주고 있다는 우리의 족보가 사실상 선조님들의 제작초심(製作初心)과는 달리 검정(檢定) 없는 한 역사책으로 변하여 선계(先系) 왜곡(歪曲)을 예사(例事)로 하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하니 또한 급변하는 앞날에 어떻게 전통을 지켜나갈지 생각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정적 심리를 바로 잡고 순수성을 이어 가능한 한 앞으로 정확한 자료를 수록함으로써 타(他)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씨족사서(氏族史書)로 전환 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사료(史料)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정보기술시대에는 허위정보를 무색(無色)케 하는 엄중한 보학심사위원회(譜學審査委員會)를 둘 것입니다.

종전의 책자형식으로는 또 30년(1世代)을 기다려야합니다. 그보다는 이 전자세계(電子世系)는 이전의 책을 개인 컴퓨터는 물론 스마트폰으로 계보(系譜)뿐 아니라 모던 동명이인(同名異人)을 금시 찾아 촌수(寸數)까지 분별하게 됩니다.
역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철칙을 따르게 됨으로써 과거의 날조(捏造)된 왜곡사(歪曲史)도 오늘에는 정도(正道)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결코 우리 씨족의 전통(傳統)성이 유지될 것으로 믿어마지 않습니다. 그 왜곡 주동자들은 부매랑 효과(boomerang effect)를 받고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CD-ROM, USB 등으로 포장할 수도 있으나 그런 것은 고정된 화석족보(化石族譜) 프로그램으로 예측됨으로써 지금 계속 진화(進化)되는 프로그램(홈페이지)의 전자세계를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종파(宗派)를 때어갈 수도 있으나 거기 수단(收單)을 의미로 추가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오늘의 우리나라는 호적법(戶籍法)이 폐지되고 가족법(家族法)이 시행되어 계보(系譜)를 찾을 수가 없게 될지도 모르며 공식적 계보의 종말이 의심되기도 하나 올바르게 정리된 세계적(世系的) 기록은 우리들의 전통적 기초(基礎)를 더욱 든든하게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한글세대에게는 기존(旣存)의 한문위주의 족보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에 이해를 돕기 위해 국한문혼용(國漢文混用)으로 21세기 사회과학에 알맞은 전자세계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또 앞으로의 세대는 정보기술 없이는 모든 것이 뒤처지게 될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따라서 21세기에 입각한 미래(未來)의 족보를 어떻게 제작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풍조(風潮)에 밀리지 않으려면 우선 가능한 한 편리하고 신속하게 찾아볼 수 있는 족보를 생각하고 조속히 조성(造成) 보급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분명히 말해 둘 것은 갑오보(甲午譜, 2014년보)가 보다 정확하고 역사적 사리(事理)에 적확(的確)하게 제작되었기에 이 전자세계의 기초본(基礎本)으로 삼은 것을 말해 둡니다.

그리고 앞으로 새로운 인물과 수단을 등재하고 싶은 사람은 이 전자세계 관리자에게 신청하면 즉시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등재(謄載)되고 바로 통보하여 본인과 조상을 즉시 찾아 선조의 얼을 되새길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원(永遠)히 밝고 깨끗한 족보로 순천김씨대종회(順天金氏大宗會)를 구상 하며 아울러 갑오보편찬위원회의 제2의 사업으로 발기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새로운 수단(收單)에 대한 전자세계보(電子世系譜)의 등재(登載)는 종인(宗人) 개개인의 신청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어 별도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처야 하며 그 결과는 본인(本人)에게 통보되며 우리종인 모두는 나와 선대(先代)의 계보(系譜)를 명확하고 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되고, 또한 이를 통해 선조님의 빛난 얼을 함께 되새기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이 전자세계보 는 우리 순천김씨(順天金氏) 대종회(大宗會)의 족보(族譜)로서 어느 문중(門中)의 것 보다 우월하고 또한 표준적인 것으로 발전유지(發展維持) 될 수 있겠끔 구상하며 아울러 갑오보(甲午譜)편찬위원회의 제2의 사업으로 성취해 나갈 수 있게 발기인 모두의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하여 발기(發起) 하고자 한다.

2016003 發起人(가나다순) :
김가연 김격진 김규표 김남균 김동식 김동운 김동壎 김동勳 김두희
김두원 김만희 김만희(葛) 김병철 김상호 김오현 김용웅 김용희 김원걸
김익영 김인섭 김정걸 김정수 김창섭 김철희 김태석 김한철 김휘태

⧭ 참고 사항

Ⅰ. 대종회(大宗會)의 시원(始原) :
1916(丙辰), 9月 3日(음 8月 6日 월담사(月潭祠)를 문경 작천(鵲泉)에 중건(重建)하고 음 9월 11일 불천위신주(不遷位神主) 봉안 후 인근 집성 종친들이 다례(茶禮)를 올리기 위해 계회(稧會)를 조직한 일이 전국규모 종친회(宗親會)로서의 처음 모임이었다. 그 로부터 10년 후인 1926(丙寅)년 3월 28․29 양일(음 二月 十五 ․ 十六 兩日)에는 보다 발전적으로 大宗會라 하였다. 그 이듬해에는 대계일(大稧日)을 매년 음 11월 21일로 정하였다.
1929년부터 광주(廣州)에서 동참하기 시작했다. 이후 1947년까지 대종회는 유지되었는데 당시 사회혼란으로 모임이 멸실(滅失)되었다. 다례 책임이 축소되어 집성촌이라 하는 작천 성유 왕릉 아호 등으로 순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광복과 더불어 일었던 성을 다시 찾고 각집성촌만다 가승을 이어가며 파종회를 가지게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었는데 이념투쟁의 극치인 6.25동란도 격고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사회적 안정을 찾을 무렵인 1972년 5월 31일에 서울 삼청공원에서 전국규모의 순천김씨 화수계(順天金氏花樹稧)를 창립(創立)하였다.

1984년에 갑자 대동보(大同譜)를 수보하면서 1983년에 종가의 사패지(賜牌地)관리 등이 허술함을 발견하고 순천김씨양경공파종회(順天金氏襄景公派宗會)를 결성하게 되었다. 회장은 김종철(金鍾喆) 씨였다(양경공실기 2014).
나아가 범순천김문의 위선사를 함께 논의하고 소위 甲子大同譜를 編纂하고 그 이익금(利益金)으로 숙원(宿願)이던 동원재 영당(靈堂)과 재실(齋室)을 보수하여 모든 종친으로부터의 칭송(稱頌)과 신의(信義)를 쌓았다. 그리고 나아가 더불어 전서(典書)공파, 지평(持平)공파와 여타 지파와의 공론장으로서의 종친회 상설(常設)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전국 종친들의 뜻을 모았다.

1989년 4월 10일 시조사적지정화사업기념비를 세울 때 順天金氏 大宗會의 이름으로 세웠다. 회장은 시조사적지수호관리위원회 회장이었던 金鍾鎬 씨였다.

동년 9월 순천김씨중앙종친회(順天金氏中央宗親會)를 창립하고 동 회장으로 전(前) 국회의원 김종식(金鍾植) 씨를 선임했다. 따라서 양경공파 대종회의 존립의 의의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훗날 서울 종친회로서 그 맥을 유지하였다.

1994(民國 76년)에 실전(失傳)이라 전해오는 계대를 일부에서의 극렬(極烈)한 반대(反對)에도 불구하고 상계대(上系代)로 입록한 족보를 기획하고
2004(甲申)년에는 결국 왜곡(歪曲)한 족보를 발행한다. 중앙종친회의 불칙(不飭)한 행위에 불복(不服)한 종친들이 모여 순천김씨양경공파대종회(順天金氏襄景公派大宗會)를 창설 하였다. (회장 김철희), 2014(甲午)년 순천김씨양경공파대종회(順天金氏襄景公派大宗會)를 중심으로 2004년에 중앙종친회에서 발행한 소위 대동보를 왜곡이라 규정하고 새로운 6번째의 순천김씨대동보(順天金氏大同譜)를 꼭 한 세대 30년이 되던 해에 갑오보(甲午譜)를 정당(正當)하게 발행했다.
따라서 한 씨족에 족보가 두 가지가 되었다. 앞으로 어느 것이 정당성을 가지는 가에 대해서는 오늘의 정보기술 시대와 더불어 우리들의 전자세계를 유지 발전시킴으로 써 그 정확성을 인정받을 것이다.

Ⅱ. 순천김씨 종친회 전자세계(電子世系) 이점

1). 앞으로 30년이라는 한세대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등재 즉시 확인 됨
2). 동명이인을 부(父) 조(祖) 휘자(諱字)의 검색으로 즉시 확인 됨
3). 촌수를 즉시 확인됨으로써 망발(妄發)을 방지할 수 있음
4). 역사 속의 선조를 즉시 확인 할 수 있음으로써 자신의 뿌리를 신속하게 확인할 수 있음
5). 족보를 스마트폰에 업로드하여 언제어디서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음
6). CD-Rom, USB는 시대적으로 한정적이지만 전자세계는 영원히 발전될 수 있는 기능을 가짐 <미래세대의 편리한 필수 족보>

Ⅲ. 참고자료 2 :

1. 月潭祠 沿革

1916(丙寅)年)10月 7日(음 9月 11日) : 御盟錄과 神主奉安 1918(戊午)年 2月 25日(음 元月十五日) : 花樹楔案 100명 참가(參加)
1922(壬戌)年 4月 19日(음 三月二十三日) : (月潭祠次) 大宗楔발의
1923(癸亥)年 12月 4日(음 十月二十六日) : 鵲泉宗中 修楔案 마련
1924(甲子)年 2月 19日(음 正月十五日) : 別廟祭祀奉奠之道理, 전 자손에게 통문
1925(乙丑)年 : 연간 5회 제례(祭禮)
1926(丙寅)年 3월 28․29일(음 二月 十五․十六 兩日) : 大宗會 명칭을 처음 사용
1927(丁卯)年 : 大楔日은 每年 陰十一月二十一日로 完定事
1928(戊辰)年 : 祠宇 垣墻修理費, 四次祭需條(鵲泉, 新基, 瀟陽, 寒泉 出)
1929(己巳)年 : 廣州에서 동참 시작
1930(庚午)年 3月 7日(음 二月八日) : 자산관리 시작

2. 順天金氏世譜 또는 大同譜 修撰 沿革
1). 1764 甲申初譜 , 英祖 40年 都有司 金百鍊
2). 1857 93년後 丁巳譜 ㅡ 哲宗 8年 都有司
3). 1927 70년後 丁卯譜 - 强占期 都有司
4). 1957 30년後 丁酉譜 - 自由黨 動亂 直後 都有司 金志賢
5). 1984 30년後 甲子譜 - 全斗煥 大統領 時 都有司 金浽永
6), 2014 30년後 甲午譜 - 朴槿惠 大統領 時 編纂委員長 金沅杰 1~ 5회 까지 失傳된 上系를 硏究課題로 두고 發行함

3. 엉뚱하게 태어난 2004년의 갑신보 :
갑자보 수찬(1984)이후 10년 만에 당시 종무간사 김호연 씨의 제안으로 엉뚱하게 중앙 종친회 회장 김종식 씨를 비롯하여 그 상임고문 김영희 씨, 상임부회장 김상용 씨 등의 주장으로 2004년갑신보 가 탄생하였다. 기(旣) 갑신초보(甲申初譜)에도 황당(荒唐)하다고 채택하지 않은 영주군수 백련공이 세워 두었던 가설도(假說圖)를 정본(正本)인양, 더구나 그 가설도에서의 한세대를 김동주 씨가 25~30년으로 늘려 날조(捏造)한 것을 약 250여 년 동안 실전(失傳)으로 전해오던 세계에 느닷없이 입록(入錄)함으로 써 시조(始祖)가 헌안왕(憲安王)시절의 인가별감(引駕別監)으로 역사까지 날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 씨족은 소위 환조역부(換祖易父)의 조짐을 보이는 우(愚)를 범하였다. 즉 고대(古代) 조혼(早婚, 1925년의 결혼연령 남 20.5, 여 16. 5)시절의 한 세대를 25~30년으로 엿가락 늘리듯 늘이며 시조의 활동시대를 왜곡하였다. 초보(初譜)이후 5차에 걸쳐 보소(譜所)를 두었지만 그 가설은 근거(根據)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럴 경우 근거를 찾지 못하면 찾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정답(正答)인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회관(會館)건립이라는 명분을 세우고 절재공(節齋公)을 주역(主役)으로 한 『거칠 것이 없어라』 그리고 절재의 『가훈』 액자를 제작, 호응을 얻어 모두 종친들에게 판매하는 등. 이와 연계하여 새로운 족보를 발간하겠다고 제안-갑자보에 누락한 종친을 수보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며, 소위 선조의 장미(薔薇) 빛 업적과 공적을 이용한 상귀발동(商鬼發動)의 의심을 풍겨 빈축을 사기도 했다. 회관 건립 기금이 얼마나 쌓였는지는 알지 못하였다. 이처럼 부당성(不當性)을 규탄하며 절대 반대하는 몇몇 파가 있음에도 불고하고 반대하는 종친을 종친회 이사진(理事陣)에서 완전히 제거하고 몇 사람의 주장으로 추진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따라서 족보제작을 반대하는 종친들은 양경공파대종회를 새롭게 구성하게 되고 보다 정당성을 띤 갑오대동보(甲午大同譜)를 갑자대동보이후 꼭 30년만인 2014(甲午)년에 새롭게 출간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김종식 씨의 20년 집권(執權)이 끝나고 새로운 임원으로 구성되어 운영하나 역시 전직자들의 활동을 연계, 그 황당한 실전가설세계(失傳假說世系)를 정당화하여 대전(大田)의 뿌리공원(公園)에 순김(順金)의 뿌리기념탑(紀念塔)까지 수립(竪立)하려는 계획을 세우니 할 말을 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