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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사
우리는 바야흐로 전자시대(제3의 산업혁명)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족보란 고려 문종(文宗) 때부터 왕세계의 유지와 더불어 인재등용(人材登用)의 도구로 활용되었던 것이나 진화(進化)를 거듭하여 이제는 일반 평민(平民)에서까지 보편화되어 선대(先代)와 그 뿌리를 찾고자하는 수단의 하나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훌륭한 선조의 훈업(勳業)을 본받고 또 스스로의 위상을 추스르며 유지증진에 활용할 수 있는 보책(譜冊)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의 우리나라 국세(國勢)조사에 의하면 289종의 성씨(姓氏)에 4,939종의 본관(本貫)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에 놀랐습니다. 본관이 이렇게 많다는 결과는 전통적 족보라는 인식이 오히려 희석되어 응집력이 보다 줄어들 염려가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혹 다문화시대로 되어가는 증거라 짐작되는 동시에 각 본관마다 그들 나름대로의 계보를 가지고 있거나 가질 것이라면, 또 대성(大姓)들의 파보(派譜)까지 추가한다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불어날 것이 상상되고 보면 매우 흥미 있는 씨족 사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허나 우리 순김(順金)도 그 중의 하나이지만 그와는 달리 유구(悠久)한 내력을 가진 씨족중의 하나이기에 아무리 민주(民主) 운운하더라도 소중히 여겨 계보를 보존하도록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우리 순김의 세보(世譜)가 조선영조(英祖)40년(甲申, 1764)에 처음 편찬된 이래 일정한 정기적 발행은 아니지만 전통(傳統)의 대종회(大宗會)에서 다섯 번째로는 대동보)를 구상하고 최근의 甲子년에는 대동보를 발행(甲子大同譜, 1984)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 만에 새로운 중앙종친회(1989년 창설)를 창설하고 그 후 10년이 되던 해에는 회장을 제외한 몇 임원들이 교체되더니 기대를 저버리고 엉뚱하게도 갑자보는 대동보가 아니라고 비난하며 회관건립 등의 이유를 달고 다시 새 족보 간행을 발의합니다.
허나 그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일부 종원(宗員)의 강력한 반대의견을 제시하였으나 이들을 이사(理事)진에서 제거(除去)하고 발의 10년 만인 甲申(2004)년에 이것이 대동보라며 발행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전체를 아우르지 못한 반(半)쪽 족보가 되었을 뿐 아니라 내용(內容)적으로는 중시조(中始祖)부터 시조(始祖) 휘(諱) 총(揔)까지의 부지기대기명(不知幾代其名)으로 실전(失傳)되었다고 하는 상계(上系)를, 아직도 불확실한 가설(소위 記夢世系라 전하는)을 봉합(封合)하여 조상의 계보를 왜곡(歪曲)하는 불행(不幸)을 저질이고 말았으니 이는 우리 씨족의 불운(不運)을 자초한 일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 한편 그 부적절한 족보에 결코 동참하지 않은 종친들은 별도의 새 족보를 갑자보후 꼭 30년 만인 甲午년(2014)에 갑자대동보를 바탕으로 한 6번째로 발행하여 불행을 바로잡고자 했습니다.

다만 연락이 닿지 않아 그렇게 된 내용을 잘 모르는 종인, 또는 앞으로의 후손들에게 혼란을 일으켜 집행 당사자들은 양자 모두 원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이기에 언젠가는 종친(宗親)보학자(譜學者)들로 하여금 밝혀질 것입니다.
결국 정사(正史)에 기록된 선조(先祖)를 가진 씨족이라야 대한(大韓)의 씨족(氏族)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씨족의 역사를 바로잡고 앞으로 제3 제4의 전자(電子)혁명시대에 살아갈 후손들에게 일어날 갈등을 사전에 해소(解消)하기 위해서 우리는 전통의 순천김씨대종회(順天金氏大宗會)의 이름으로 전자세계(電子世系)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역사가 오늘의 바탕이 되며 또 오늘은 미래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 흐린 역사이면 흐린 미래가 될 것이 완연한데 어찌 그런 어둠의 인생을 살아야하겠습니까.
이제 단단한 각오로 기획된 이 전자세계의 원칙에 따르면 모든 종원은 스스로 정확성을 알게 될 것이며 분명히 밝은 씨족사회를 이룰 것이라 믿어 마지않습니다.
다만 아직도 실전의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중간세계를 계속 연구하여 왜곡된 상계를 바로 잡아 허구(虛構)적 선조를 만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연구기간을 참지 못하고 불확실한 가설을 날조(捏造)하여 중간에 삽입 봉합하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교적 오류 없는 甲午(2014)보 제작의 연장선상(延長線上)에서 다시 30년을 기다릴 필요 없이 그동안 족보의 이해(理解)에 불편(不便)한 점을 개선하고 한 가족의 출생 사망 결혼 등의 동향과 계보상황을 즉시에 파악할 수 있고 또 선조들의 활동상도 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등, 여러 가지 궁금한 것을 언제 어디에서나 즉시 확인할 수 있도록 꾸몄습니다.

참고로 우리의 족보 편찬사(編纂史)를 뒤돌아봅니다. 절재공(節齋公) 복관(復官)을 기다리며 비교적 타문(他門)보다 늦은 甲申년에 처음 창간(創刊). 제2회는 93년만인 丁巳년(1857, 철종 8)에 수보(修補)했고, 제3회는 그 후 70년 만인 丁卯년(1927, 日帝强占 17)에, 제4회는 그 30년만인 丁酉년(1957, 民國 39)에, 제5회는 27년 만인 甲子년(1984, 민국66)에 발행하였으며 제6회는 꼭 30년만인 甲午년(2014, 민국 96)에 발행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족보는 소장(所藏)하기에는 유익할지 모르나 만약 오류(誤謬)가 있는 경우를 수정하지 못하고 또 한 세대(30년)를 묻어 둬야하는 답답함을 금치 못하고 먼 훗날 그게 다시 논란의 불씨가 되어 종친간의 의(義)를 상하게 할 소지를 제공하게 되고 맙니다.

그래서 오늘에 도래한 전자시대(電子時代)에 순응(順應)하는 의미와 더불어 과거의 오류(誤謬)도 신고 받아 검토(檢討) 후 즉시 수정(修正) 입록하여 보다 빠르게 정확(正確)하게, 편리하게, 그리고 다시는 후대(後代)에 논란(論難)이 없도록 함으로써 소위 살아있는 족보를 제작하여 우리들의 숭조(崇祖)사상을 고취(鼓吹)하고 후손들에게 믿음을 이어주는 가족(家族)의 사서(史書)가 되도록 함임을 덧붙여 둡니다.
감사합니다.


전자세계 편집위원장 金沅杰 삼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