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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공신도비(襄景公神道碑)





襄景公神道碑

 

 `은 시조(始祖) 인가별감(引駕別監)공의 후손으로 우리 順天金氏의 중흥조(中興祖)一人이다. 太祖 定宗 太宗 世宗 등 연 조의 내외직(內外職)에서 많은 공을 세우셨다. 태종대에 좌명공신(佐命功臣)에 책록 되시고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에 봉작世宗 6년 졸하시니 시호 襄景, 그리고 부조선(不祧典)의 은전도 받으셨다. 1732(壬子)1959(己亥)에 세운 신도비가 훼손 또는 잘못되어 1986(丙寅)에 이와 같이 다시 세웠다

 

 <위  1986년에 새로 세운 신도비의 내용 요약>

시 양경공(諡襄景公) 월담 김선생(月潭金先生) 신도비명 병서(神道碑銘幷叙) 

 

숭록대부 좌의정 평양부원군(崇祿大夫左議政平壤府院君시 양경공(襄景公월담 김선생(月潭金先生신도비명 병서(神道碑銘幷叙) 1956년에 개수한 비다

영가 후인 권상규 근찬

은진 후인 송우용 근서

 

선생의 초명은 을보(乙寶)였는데 왕명을 받고 비를 빌면 문득 비가 내렸기 때문에 승주(承霔)란 이름을 하사하였다성은 김씨월담은 호라 소개하고 그윽한 빛과 잠덕의 번성과 영광이 끝이 없으니 선생의 매종지덕(邁種之德)이라 극찬한다옛날 세운 비갈(碑碣)은 지난 경인년(1950) 난리 때 폭격에 파손되었다그러자 후손들이 장차 신도비(神道碑)를 묘역에 세우려고 나에게 명()을 지어달라고 청하였다하여 다음과 같이 명을 한다.

 

혁혁한 성조(聖祖),

하늘의 보록(寶籙)을 받았도다.

뭇 철인(哲人)이 기회를 만나,

몰려가서 임금을 보좌하였도다.

 

이때에 양경공(襄景公)께선,

훌륭한 재질로 발탁되었도다.

훈권(勳券)에 이름이 기록되고,

맹부(盟府)에서 피를 마셨도다.

 

낭묘(廊廟)에서 정무를 살피니,

모든 일에 다 실적을 남겼도다.

변방에 가서 깃발을 세우니,

외적이 자취를 감추었도다.

 

올바른 마음 굳게 가지고서,

있는 곳마다 직책 다했도다.

네 조정 섬기며 몸과 마음 다하여,

고굉(股肱)과 주석(柱石) 되었도다.

 

군자가 세상을 떠나가니,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도다.

시호를 내리고 치제를 했으니,

임금의 은총 더없이 높았도다.

우뚝 솟은 저 원산(元山),

넉 자의 봉분이 치솟았도다.

용두구좌의 신도비는,

묘소의 곁에 우뚝 섰도다.

 

세상의 모든 군자들은,

이 신도비명을 한 번 볼지어다.

단기4289(1956) 병신 2월 일 입

 

<아래 우측 작은 구비(舊碑) 비문>

忠翼戴佐命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平陽府院君諡襄景金承霔墓碣 :

 

전면(前面)에는 추충익대좌명공신대광보국숭록대부평양부원군 시 양경 김승주묘라 하였고 후면은 영락(永樂)22(1424) 甲辰 4월 초4일 장(), 측면은 홍치(弘治)8(1495) 乙卯 323 이장(移葬)이라 새겼다. 1424년에 조성된 로서 조선 초 좌명공신으로 대광보국숭록대부 평양부원군에 시호가 양경인 순천김씨 김승주의 묘갈(墓碣)로서 이장(移葬) 시 그대로 옮겨와서 측면에 이장사실(移葬事實)을 적은 것으로 보인다. 즉 조선(朝鮮) 초의 전형적(典型的)인 비갈 형식을 보여준다. 이 비문(碑文)을 짓고 쓴 사람을 춘정(春亭) 변계량(卞季良)으로 추정(推定)한다.

 

<아래 좌측 큰 구비(舊碑)의 비문>

시 양경 김상공 신도비명(襄景金相公神道碑銘) : 의 휘는 승주(承霔), 호는 월담(月潭)이며 본관은 순천으로 시조는 휘가 총()인데, 벼슬이 인가별감(引駕別監)에 이르고 공의 아래세대는 실계 하였다 증조는 휘가 윤인允仁인데 고려의 전객령(典客令)을 지냈고, 조부는 휘가 형인데 판밀직(判密直)을 지냈고, 부친은 휘가 유정(惟精)인데 여산군(麗山君)에 추증되었다. 두 아들을 두니 맏은 을재(乙財)로 호조전서이고 공은 차남으로 태어나 휘가 을보(乙寶)였는데 태종조 가뭄 때 마다 비를 빌면 비가 내렸기 때문에 승주(承霔)란 이름을 하사받았다. 배위는 마한국부인 평창이씨(馬韓國夫人李氏)로 묘소는 甲坐()에 쌍분으로 되어 있다. 5남을 소개하고 임자(壬子)(1732) 8월에 표석을 세워 세계(世系)의 대략을 기록하니 후대 자손의 더 많은 고찰이 있을 것이

소재지 : 京畿道 廣州市 退村面 元堂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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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국부인 이씨 묘비(馬韓國夫人李氏墓碑)
양경공묘(襄景公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