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백당공(忍百堂公)의 13세손 사즙(士楫), 호 하은(霞隱) 휘 태영(泰永,高宗 6, 己巳 1869 ~ 民國 33 辛卯 1951)은 光武 7년(1903) 통훈대부행중추원의관(通訓大夫行中樞院議官)으로 칙명(勅命)을 받았으나 러일 간의 혼정(昏政)의 불확실한 관계에 나가지 않았다.
자호(自號)를 하은(霞隱)이라 하고 부득이 은둔의 길을 걸으며. 나라의 정신적 기반을 잃지 않아야한다는 일념으로 선조의 얼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 종친 숙원의 월담사(月潭祠)의 중건(1916)과 옥녀봉서당(玉女峰書堂), 소양서원(瀟陽書院) ,영류정(暎流亭) 구은대(九隱臺, 1933) 등의 중수(重修)를 주관(主管)하셨고 선고(先考) 석하(石下) 휘 상보(商輔)공의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1929년 이 금하정(金霞亭)을 창건 하였다.
공의 문집은 하은고(霞隱稿)와 동유록(同遊錄)이 있다.
소재지 : 聞慶市 加恩邑 鵝湖洞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