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재공 휘 종서 묘(節齋公 諱 宗瑞 墓), 1383-1453)
公은 공주(公州) 요당면(要堂面) 동혈산하(銅穴山下) 요당리(要堂里)에서 출생(出生)하여 대종조(太宗朝)에 문과이랑(吏郞)을 시작으로 요직을 두루 섭렵하시고 동북면(東北面)의 육진(六鎭)을 개척, 국토를 넓혔으며 좌의정(左議‘政)에 올라 단종조(端宗朝) 고명대신(顧命大臣)으로 보위하시다 수양(首陽)의 탈권(奪權)욕에 누명쓰고 철추(鐵鎚)에 쓰러졌다.
英廟 22(1746, 丙寅) 10世孫 경조(景祖)가 신원을 청하고 영상(領相) 김재로(金在魯)가 진달(陳達)하니 연중(筵中) 복관(復官)을 명하였다. 1758(戊寅) 기대하지않았으나 특히 증시(贈諡) 충익(忠翼)이라 하였다.
묘역(墓域)은 충청남도문화재(忠淸南道文化財)로 지정됨. (지금 세종시 기념물 제2호)
묘제일 : 음 10月 3日
소
재지 : 公州市 長岐面 大橋里 持平公墓東麓艮坐(지금 世宗特別自治市 將軍面 大橋里 산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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