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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평양군 휘 총(始祖 平陽君 諱㹅)의 분묘



시조 평양군(始祖 平陽君) () 총()의 분묘이다.

은 승평(昇平順天)방으로 나아가 외구(外寇)를 격퇴하여 민생을 편케 하니 백성들이 공의 영정을 진례산(進禮錦山의 옛 이름)에 모시고 지역의 수호신으로 추앙하였다. 누세(累世) 실전 되었으나 순조(純祖) 28戊子(1828) 후손 현순(炫淳)의 지성어린 노력으로 묘소실전(墓所失傳) 900餘年만에 지석(誌石)을 찾게 되어 확인, 준호(遵浩), 순중(洵中), 익범(益範), 승태(昇台), 승실(昇實) 등과 함께 개봉영(改封塋)하였고 광양종중통문(光陽宗中通文 주 1. )을 내어 익년 2월 15일에 송광사로 모이게 하였다.

  

후일(1994년 경) 종친 한화그룹 김승연(金升淵) 회장의 헌성금으로 오늘과 같이 묘역을 정비하게 됨

제향일 : 101

소재지 : 순천시 주암면 주암리 五聖山下 丑坐.

 

주 1. 全羅道光陽宗中通文 :-

云云惟我鼻祖引駕公山所。在於順天住岩村官竹田云。以譜牒山圖錄稽考。一無可疑惑。而果見兵燹之餘。子孫零替。於焉之間。失其所傳。其後各處子孫。或發文聚議。或以躬行尋探。終不得其眞跡。則其所慨嘆者。非獨脚下子孫。而亦爲路上行人之嗟歎。不侫卒有尋古跡覓先山志之。脫屣家産。遐棄妻孥。跋踄千里。來留光陽。至今三載。與數三同宗相議。得地觀六名。探之搜之。了無影著矣。何幸先靈入夢。老嫗立訂。僅得古官竹田。左右周行。心魂乍驚。偶見一古塚。則雖至頹圮。亦非常塚。一雙石如席。在於墓前。故問其隣村人。則皆云引駕公山所云云。故一則有欣驚之心。一則有玄遠之意。卒乃決意。使卄餘役丁。以鉄釘掘其雙石下一丈餘。則有誌石焉。開見。則曰平陽君金公諱之墓。異哉。夢耶眞耶。無乃先靈感於余誠力而然乎。旣以得先山。則各派子孫非但來省。有一場聚。然後封築之事守護之節。在於僉論。而且引駕公書院遺址。。直神堂倉也。亦但古老之所傳。昭於吾家譜牒。則此亦不可尋常棄寘也。玆以發告。伏願僉宗來年二月十五日。齊會于順天松江寺之地。千万幸甚。<출저 : 廬江誌, 議官 霞隱 泰永文庫>

 

志之: 문매긍로 볼때 “之志”로, 聰:“摠”의 오자로,, 儀 : “議”가 되어야,  但: “非但”이 되어야, 裁 :“載”가 되어야 할 듯함 

 

국역 : 전라도 광양 종중에 보내는 통문

우리의 비조(鼻祖)이신 인가공(引駕公)의 산소가 순천(順天) 주암촌(住岩村) 관죽전(官竹田)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보첩(譜牒)의 산도록(山圖錄)으로 상고해 볼 때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병화(兵禍)를 당한 뒤에 자손이 영락하자 어느덧 전해지던 산소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각처의 자손들이 통문을 보내 의견을 취합하기도 하고, 직접 찾아보기도 하였으나 끝내 자취를 찾지 못하였습니다. 이 일을 개탄스러워하는 자가 비단 해당 자손들뿐만이 아니었으며, 또한 길을 가는 행인들도 한탄하는 바가 되었습니다.

못난 제가 마침내 옛 자취를 더듬어 선산(先山)을 찾아 볼 뜻을 품게 되어 가산(家産)을 헌 신짝처럼 버리고 처자식과 멀리 이별하여 천 리를 건너와 광양(光陽)에서 머문 지가 이제 3년이 되었습니다. 서너 분의 동종(同宗)과 상의한 뒤에 지관(地官) 6명을 물색하여 산소를 찾고 또 찾았으나 전혀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선조(先祖)의 영령(英靈)께서 꿈에 들어오시고 노파(老婆)가 입증(立證)하여 겨우 옛 관죽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좌우 주변을 돌아보는데 마음에 문득 놀라운 느낌이 들면서 옛 무덤 하나를 우연히 발견하였습니다. 비록 매우 퇴락하였지만 또한 평범한 무덤이 아니었으며, 방석처럼 생긴 한 쌍의 돌이 묘 앞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근 마을 사람에게 물어보니, 모두들 인가공의 산소라고 하였습니다. 한편으로 기쁘고 놀라운 마음이 들었고, 한편으로 오묘하고 심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내 결심을 하고서 이십여 명의 일꾼으로 하여금 쇠꼬챙이로 한 쌍 돌의 아래를 한 길 남짓 파게 하니, 그곳에 지석(誌石)이 있었습니다. 열어 보니, “양평군김공휘총지묘(平陽君金公諱摠之墓)”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기이하다! 꿈인가? 생시인가? 선조의 영령께서 나의 정성어린 노력에 감응하시어 이렇게 된 것인가?

이미 선산을 발견하였으니, 각파(各派)의 자손들이 와서 성묘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한 바탕 의견을 취합해야 하고, 그런 뒤에는 봉분을 쌓는 일과 묘소를 수호하는 절차가 여러 종인(宗人)들의 논의에 붙여져야 합니다. 그리고 인가공 서원(書院)의 유지(遺址)가 신당창(神堂倉)에 해당됩니다. 또한 고로(古老)가 전하는 말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 집안의 보첩에도 명확하게 실려 있으니, 이 또한 예사롭게 여겨서 버려둘 수 없습니다. 이에 통문을 보내 알리는 바이니, 여러 종인들께서는 내년 2월 15일에 순천 송강사(松江寺)에 다 같이 모이시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그러면 천만 다행일 것입니다.

 

리스트

시조영당(始祖影堂)
시조 평양군 사적지(始祖 平陽君 史跡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