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백당(忍百堂) 휘 낙춘공(樂春公)은 풍도가 아주 깨끗하고 성품도 매우 온후하였으며 효성이 지극하셨다.
公은 학문에 힘쓰기를 독실히 하여 문예(文藝)가 일찍이 이루어졌다.
만년에 소양(蕭陽)동으로 이거 하여 이곳에 정자를 짓고 후학을 가르쳤으며
주세붕(周世鵬) 선생(1495년,연산군 1 ~ 1554년,명종 9)이 정명(亭名)을 영류(暎流)라 하였고
퇴계 이황(退溪 李滉) 선생(1501~1570년)의 문인으로 선생께서 公과 화답하신 시귀(詩句)가 公의 일고에 많이 있다.
아래에 퇴계(退溪)와 신재(神裁)의 시 한 수를 소계한다.
소재지 : 聞慶시 加恩읍 前谷리(瀟陽洞)
贈詩(증시) 1 퇴계선생(退溪先生)
感君高義薄秋旻(감군고의박추민), 그대 높은 의기(義氣)는 넓은 가을 하늘 같으니
急手援拯井裏人(급수원증정리인). 급한 손길로 우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었네.
更護遠來分付我(갱호원래분부아), 다시 그를 데리고 멀리서 찾아와 나에게 맡기고는
翛然歸去不矜仁(소연귀거불금인). 바람처럼 가버리고 어진 행실을 자랑하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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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증시는 일찍이 죄없이 옥에 갇힌 사람을 신원하여 석방시켜 그와 더불어 도산(陶山)의 퇴계(退溪)선생을 찾아와 배알하였는데, 선생이 이 시를 지어서 그의 높은 의기를 칭찬하였다.
이황(李滉, 1501~1570):조선 중기의 대학자.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어려서 부친을 여의고 숙부인 송재 이우로부터 가학을 전수받고, 홀로 학문에 침잠하여 대성하였다. 주자학을 깊이 연구하여 그 핵심인 이기론과 사단칠정론을 정교하게 발전시켜 성리학의 한국전 완성을 이루었다. 평생 벼슬길에 나가고 들어왔으나, 본업을 수양과 교학에 두었으며, 안동의 토계리 도산에 서당을 열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었다. 선생은 학문의 요체를 존심양성(存心養性)하는 경(敬)공부에 두어, 몸소 철리(哲理)의 실천을 닦아간 실천윤리학자이자 교육가이고 도학자였다. 선생이 돌아가신 후에 후학들이 선생의 학덕을 사모하여 도산서원을 짓고 학문을 계승하여왔다. 시호는 문순공(文純公)이다.
寄題暎流亭(기제영류정),영류정에 부치다. 신재(愼齋) 주선생세붕(周先生世鵬)
水抱靑山山抱流(수포청산산포류), 물은 청산 안고 산은 물 안아서
鏡中光影共沈浮(경중광영공침부). 거울 속 풍경은 가라앉았다가 떴다가…
百年慳秘人相得(백년간비인상득), 백 년 동안 아끼고 숨겨 둔 것, 이제야 내 보노니
嘉爾妙齡趣味幽(가이묘령취미유). 아름다운 아가씨처럼 감흥이 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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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붕(周世鵬, 1495 연산군 1~1554 명종 9):조선의 문신·학자. 시호는 문경공(文景公).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남고(南皐)·무릉도인(武陵道人)·손옹(巽翁).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후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세웠다. 저서에 ≪무릉잡고(武陵雜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