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담(翠潭)공은 判事公 휘 元石의 15세손 윤문(允文)의 10세손, 두섭(斗燮)의 증손(曾孫),자 경도(景道) 호 취담(翠潭) 휘 기황(基璜, 憲廟 7, 辛丑 1841 ~ 高宗 26, 己丑 1889년 3월 27일)이다.
公은 통훈대부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지냈다.
효우 돈독하고 흉년에 기민(飢民)을 구제하니 향민들은 그 덕을 글로 써서 널리 알리었다. 公은 선대유지(先代遺志)에 따라 마을 입구에 翠潭亭을 짓고 강물을 굽어보며 현량들과 우국충정을 담론 하였었다.
후일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현판을 친필(親筆)로 써 주어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소재지 : 安東시 豊川면 九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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