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백당(忍百堂) 곤손(昆孫,七세손) 휘 성의공(性義公, 憲宗 2, 丙申 1836 ~ 高宗 24 丁亥)은 五대 독자로 선영(先塋) 측근에 金아무개가 늑장(勒葬)한 것을 철거토록 누차 제소했으나 도중에서 기각되어 어느 날 임금이 동구릉(東九陵)에 행차함을 알고 아들 영재(濚在 哲宗 5 甲寅 1854~高宗 23 丙戌 1946)에게 행차 길을 막고 상소토록 하여 高宗께서 한성부(漢城府)에 명하여 수일 후 읍관(邑官) 입회하에 철거하게 되었다. 후손들이 공의 숭조심(崇祖心)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정자다.